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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이야기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여자

삼십여년전 모든 농삿일을 손으로 할때입니다.

이웃이 두집뿐인 산속에서 열댓마지기의 논을 부치는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모내기철이 돌아오면 일꾼을 얻는일이 늘상 문제였지요.

(남편은 처음 삼년간은 직장을 다녔슴)

시아버님은 산넘어 너른 들판에서 따로 사시고....

 

아버님계신 동네에서 모내기를 끝내고

젤 마지막 뚜껑잽이로 저의집 모내기를 해서는

하루 천렵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날 저녁 일꾼들을 열명도 넘게 데리고 아버님은 산을 넘어 오셨습니다.

전화도 없고 버쓰도 드문드문 다녀서 산으로 오시는게

더 빠른 일입니다.

 

남편은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막걸리를 받으러 이십리길을

달리고 저는 식사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전기가 없는 두메산골....

냉장고가 있나 전깃불이 있나...

수돗물이 있나...

 

네식구 먹던 집에 김치가 있나...

날마다 담그어 조금씩 해먹던 생활이니까요.

 

새벽 네시면 일꾼들은 논에 들어가 모를 찝니다.

저는 세시면 일어나서 아욱을 뜯어다 비벼씻어

된장풀고 죽을 물그름하게 쑤어서는 막걸리와함께

가벼운 상을 봅니다.

 

돌아서서 아침을 준비하는데 집에 있는거라곤

계란과 김 멸치만 있을뿐 다른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불 때고 물퍼서 아침을 준비하려면 참말로 바빴습니다.

 

일꾼도 많은데 일도 잘 못하시는 어머님은

논에 들어가 일꾼들과 모를 찌시고 계십니다.

어머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머님, 파나 좀 다듬어 주시지...

마늘이나 좀 까 주시지...

 

남편은 쇠죽을 쒀주고 출근을 하느라 도움도 못돠고요.

어찌어찌 아침을 차려내고 돌아앉아 국수를 밀어

새참을 내고 닭잡아 점심을 하고....

 

저는 하루종일 뛰었습니다.

걸어다닐새가 없었습니다.

부엌에서 우물가는 (마당끝에) 좀 멀었거든요.

어머님은 여전히 모내기를 하시고 일꾼들보다 더 늦게

논에서 나오시며 흙뭍은 발을 일꾼들보다 나중 씻으셨습니다.

 

항상 얘야, 찬찬히 하거라...찬찬히 하거라 그러시면서요.

때맞춰 일꾼들 밥 드리려면 그럴수 있나요.

제가 지금도 온갖 채소와 여러가지를 기르는것은

그때부터의 습성인지도 모릅니다.

 

언제 어느때 손님들이 들이닥쳐도 해내야 하는것이

부엌의 며느리이었으므로....

 

지금의 농사가 아무리 힘들다해도 그때에 비하면

호강입니다.

참말 정신 번쩍드는 시집살이.....

무심한듯 자상한듯 모질게 시키시던 시어머니..

지금도 한참 바쁠때면 얘야 찬찬히 하거라 찬찬히 하거라...

하시던 말씀이 귓전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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