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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자릿조반에 대하여...

시집오던 첫해에는(12월 중순) 아버님 생신이

한달 안쪽에 있어서 그냥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다음해 이맘때쯤 아주아주 추운날 어머님은 미리

큰 며느리를 시댁으로 부르셨습니다.

작은 며느리는 한해 먼저 시집을 와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며

저는 명색은 큰 며느리이긴 하지만 시내에서 따로 살고있었지요.

 

과년한 시누이가 두명이나 있고 시어머님이 두 분이고

작은 시어머님들이 세분...

시집가서 친정으로 생신준비하러 온 시누이가 두분....

 

이 정도의 여인네가 모여도 큰일은 거뜬히 치르겠지만

너른 동네 앞 뒷집 아지미 조카뻘 친구등등...

때마다 상 차리기만도 너무 힘들어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떡을 몇말을 하는지 적을 얼마나 구워대는지

한편에선 먹어대고 한편에선 열심히 해대고...

그 저녁 담근 미역을 씻는데 시 할머니는 창문으로 내다 보시며

"아가야! 미역은 거품이 안날때까지 비벼서 씻어야한다."

"미역은 칼로 자르지말고 손으로 뜯어야 한다"

 

파를 씻어도 일일이 줄기를 훑으며 씻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들으면서 저녁이 되었습니다.

밤에도 할일은 태산이었지요.

지금처럼 맞추거나 사오는게 아니니  한편에선 밤 까고 대추씨빼고

한편에선 찹쌀 쪄 내고 다시 버무려 약밥을 찌고...

 

일을 안해본 고운손은 스텐 밥그릇에 밥을 뜨면 왜그리 뜨겁던지

 설겆이 할때는 그룻테두리에 손이 베이기도 하였지요.

 

다음날 새벽...

큰 가마솥에는 벌써부터 불을 지펴 사골을 고아내고 있었지요.

나는 얼른 미역을 가져다가 솥에 넣었습니다.

이때 깜짝 놀라시는 시어머님....

어머님은 무언가 상을 차리고 계셨는데

그 상에는 새벽에 썰은 약식 조금과 금방 무친 잡채등등...

준비한 음식중에서 조금씩을 담아놓고 국물을 뜨시려던 것이었는데

그만 아무것도 모르는 큰 며느리가 미역을 풍덩 넣어 버렸으니....

어머님은 국자로 뽀얀 국물만 가려 떠서는

아버님과 시할머님의 자릿조반을 차리셨습니다.

 

생신상을 받으시려면 한두시간은 더 있어야 하므로

일찍 가벼운 상을 보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리큰 생일잔치는 구경도 못하면서 큰터라....

보통의 가정에선 식구끼리 아침을 먹고 점심때나

동네 친구분들 초대해서 술과 음식 대접하는게 고작이었는데

이건 식구만해도 수십명....

작은아버님들이 가근방에 사시니 집집마다 일고여덟명...

딸 사위 손자등등....

 

환갑도 되시기전의  아버님은 지금의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위치에서

군림하고 계셨지요...

오늘의 제 위치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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