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는 시장에서 매일 만나는 친구가 한사람 있습니다.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농사일을 하는지라
어느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입니다.
새벽에 늦게 나가면 자리도 미리 맡아 놓았다가 내어주고
무거운 물건 옮겨 갈땐 서로 도와가는 꼭 필요한 그런 사람
아침장이 시작되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두 사람은 경쟁하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번개장을 지킵니다.
이름하여 독일 병정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한데 이아저씨 너무나 생활에
골몰한 탓에 다른 세상을 모른답니다.
오로지 집과 일만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지요.
같이 단풍 구경이라도 가자고 했는데 갈 시간이 없다고
자기는 아무래도 그리 살다 죽을것 같다고 하더랍니다.
세상엔 일않고 놀기만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일만 미련하게 하는지 남편은 불쌍한 친구라고 많이 가슴아파 했습니다.
내 생각엔 남편도 불쌍한것 같은데...
그렇게 성실하고 착한분이 어제새벽 한시반쯤 무 배추를 가득싣고
번개장을 나오시다 과속으로 달리던 트럭에 받혀서 돌아가셨습니다.
가을가뭄에 김장농사 짓느라 힘드셨을텐데....
모처럼 가을비는 내리고 밭마다 주인기다리는
저 배추와 무 알타리와 파는 어쩌라고 그리 가셨는지요.
어제 오늘 남편은 말이없습니다.
나도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서리오기전에 청양고추 마저따서 팔아야 하는데....
마음뿐 일손이 안잡혀서 오늘도 쉽니다.
아침 새벽장에서 떨며보낸 많은세월 훌훌털고
저세상에서는 행복한 생활 누리시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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