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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갈곳이 없다...

 

 

아랫동네 형님은 스무살도 전에 시집을 오셔서

아직도 이동네에 사십니다.

젊은날엔 제 사는 바로 아랫집에서 사셨는데

달빛이 비치는 산길을 걸어 시내에 극장구경도 두 내외분이 다니시고

그러셨습니다.

우리는 멀고 귀찮다고 못다니는데....

좋은날에는 그리 살았습니다.

그런데 술만 드시면 식구들을 들들볶고

대꾸라도 하는날이면 손찌검을 하였습니다.

참다참다 어느해 형님은 아이들 여섯을 남겨두고

도망을 가셨습니다.

먼 도시의 어느 식당에서 설겆이를 하고 사는데

두고온 아이들 걱정에 일을해도 마음이 편치를 않았답니다.

이에 눈치를 챈 주인댁에서

작은애들을 데려오라고 하였답니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이라 어찌어찌 연줄을 넣어

애들한테 연락이 닿았으나

애들보다 먼저 남편이 알게 되었지요.

하루는 식당에서 설겆이를 하는데

시커먼 산적같은 아저씨가 찾아오셨더라네요.

애들생각해서 집에 들어가자고....

죽어도 못간다니까

그러면 내가 나갈테니 들어가서 애들하고 살라고...

그렇게해서 붙들려온게 이날 이때까지....

두들겨맞고 도망다니면서

애들 다 키워시집장가 다 보내고

일흔이 넘어 버리셨지요.

그런데 저번달에 또 맞으셨나봅니다.

새벽에 사라지신 형님은 며칠이 지나도 오시지를 않았습니다.

들깻모한다고 밭 로타리를 쳐 달래서

쳐 드린것이 그위에 풀이 한길이 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형님에게 그러시면 어떻하냐고...

얼른 찾아서 모셔오라고 하니

그분이 하시는 말씀...

"에이 그만일로 집을 나가면 안되지"

하시더랍니다.

그러고도 열흘이 더 지난후에야 형님은 돌아오셨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있었다고 하시는데

갈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늙어 찾아가는 자식집이 편하지는 않을테고

친정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고

지옥같은 집이나마 다시 찾아올수밖에 없는일이지요.

요즘은 조용히 지내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그런일이 언제 또 일어날지 모릅니다.

*****

오늘은 남편의 생일입니다.

생일날에도 편히 하루쉬게 하지못하는

못난 아내입니다.

하루종일 밭고랑에서 땀을 흘리고

삼겹살에 못하는 술 한모금 마시고는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이때까지 심한말 한마디도 안하고 산 남편입니다.

새삼스레 고맙단 생각이 드는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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