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와서 산골에 살다보니
나무하는것은 겨울철의 큰 일거리였습니다.
친정에서는 나무를 묵혀가며 살았으나
시집에서는 나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준비로 공부를 한다고
하루종일 방안에서 책을보거나 키타를 치면서 세월을 보냈구요.
남편은 직장을 다녔습니다.
아버님은 제사때나 볼일이 있으실때만
저의집에 들르시고 작은댁에 계셨지요.
노는날이나 짬을내서 나무를 해오는 남편은
나무라고 생긴것은 둘둘 말아 져다가 마당에 턱하고
벗어놓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산에만 올라가면 나무는 지천인데
새댁이라는 이름과 한번도 안해본 일이라
나무를 할 생각은 안했습니다.
어쩌다 시동생이 뒷산의 참나무를 잡아서
장작을 패면 불땐 아궁이에 착착 집어넣고
아침에 나가보면 나무가 말라서 쏘시개 조금만 있으면 잘 탔습니다.
언제나 막 깎은나무는 때기좋은 길이로
손도끼를 이용하여 착착 조그려서 부엌에 쌓았습니다.
이건 모두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삼촌이 군대를 가기전 광 에다가 참나무장작을 몇짐 패서
쌓아두었습니다.
예비품목 이었겠지요.
남편이 나무를 제대로 못해서 불때기가
어려운날은 이 장작을 꺼내다가 때었습니다.
젖은나무는 때기가 참으로 어려웠거든요.
하루는 어머님이 나무를 꺼내오는 저를 부르셨습니다.
"너 그장작에 손대지마라"
군대간 아들이 해놓은 나무를 꺼내 쓴다는게
가슴이 아프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그랬지요."
그장작 둿다가 뭐하시려구요...
"뭐하든 말든 그냥 놔둬라" 하시데요.
그날 이후 아직까지도 그나무는 광에 그냥있습니다.
이미 광도 쓰러져가고 나무는 좀이먹어 저절로 줄어 들었습니다만.....
남편이 직장다니는 틈틈이 나무를 해도
소죽쑤고 밥하고 군불때려면 나무가 많이 들었습니다.
밤낮으로 일하는 큰아들은 불쌍하지않고
군대가기전 잠깐 나무몇대 잘라서 둔 나무 꺼내쓰는것은
그렇게 가슴 아프셨던 모양입니다.
바짝말라 잘타는 나무가 그렇게 소중했던 세월이 있었는데
이제는 산에도 나무가 너무많이 우거지고
절로 썩어가는 나무도 많고 그렇습니다.
지금같으면 제가 해와도 얼마든지 해올수 있을텐데
그때는 왜 남편에게만 의지를 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