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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봉선화연정

  
비오는 여름날 울 밑에서 함초롬히 비를 맞고있는 봉숭아
그리운 고향집이 생각 나시죠?

올해도 벌써 빨간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날 우리집엔 봉숭아가 없었습니다.

집안에 딸이 태어나고 이윽고 자라나서 아름다움에 눈을 떴을때
비로소 울타리밑에 봉숭아는 자라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손톱에 물을 들이고 싶어서 이웃집에 꽃잎을 얻으러 다녔는데
예전에는 봉숭아도 귀해서 그리 많이 얻지를 못했지요.

내손으로 씨앗을 심고 나서야 마음껏 손톱에 꽃물을 들였으니..
여름날 잘자란 이파리와 꽃잎을 따서 강가의 납작한 돌위에 널어 둡니다.

그리고 적당히 시든 것을 돌로 잘 찧어서(이때 백반을 조금 섞어 넣고)
손톱에 콩알만큼씩 붙이고는 피마자잎으로 손가락을 잘 싸매고

무명실로 잘 동여맵니다.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에 풀어보면 주황색으로 물이 들지요.

물 빠지지 말라고 장독대의 간장을 조금 떠다가 손가락을 담그기도 했지요.
물든것이 영 시원찮아서 몇번씩이나 들여야 제법 아름다운 손톱을

만들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꽃잎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요.
어른들은 봉숭아의 벌레가 집안 기둥에 들어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심지도 못하게 하셨는데 이는 딸을 둔 분들의 경계심(미루어 생각하셈)
이겠지요. 그래도 어린날 우리는 누구의 손톱이 더 짙게 물이들었는지

시샘을 하며 첫눈이 올때까지 손톱의 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꽃물이 든 손톱이 오래가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첫눈을 기다렸는데
눈도 오기전에 손톱의 물은 다 자라서 없어지고....

그리고 어린날 나의 첫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았답니다.
이제 너무많은 세월이 흘러 그들의 얼굴도 잊혀진지 오래인데

홀연히 고향의 친구들이 나를 부르네요.
보고싶다. 친구야~

하지만 늙고 흉해진 내모습을 보이긴 정말 싫어.
올해도 나는 고향 하늘만 바라보며 잠시 옛생각에 잠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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